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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씨름사의 한 시대가 조용히 막을 내렸습니다. 1970~80년대 씨름계를 지배했던 ‘들배지기의 대가’ 홍현욱 장사가 2026년 4월 16일, 향년 69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국대회 11회 우승과 백두장사 4회라는 찬란한 기록을 남긴 그의 발자취와 업적을 지금 정리해드립니다.
홍현욱 장사 핵심 프로필
1957년 강원도 삼척 도계에서 태어난 홍현욱 장사는 원래 유도를 하던 선수였으나, 부친의 별세 이후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씨름으로 전향한 인물입니다. 1974년 대구 영신고로 전학하며 본격적으로 씨름에 입문했고, 이듬해 열린 제29회 씨름선수권대회에서 당시 최강자로 평가받던 김성률 장사를 2-0으로 꺾으며 강렬한 데뷔를 알렸습니다. 이후 전국선수권 2회, 대통령기 4회, 회장기 2회, KBS배 3회 등 아마추어 시절에만 총 11번의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983년 민속씨름이 출범한 이후에는 백두장사 타이틀을 4차례 획득하며 정상급 선수로 활약했고, 1989년 은퇴 후에는 한국씨름연맹에서 심판위원장과 경기본부장을 맡아 씨름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별세 및 장례 일정 안내
별세 시점과 장소
홍현욱 장사는 2026년 4월 16일 오전 8시경 부산 좋은삼선병원에서 지병 악화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69세이며, 구체적인 병명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지병에 의한 자연사로 전해졌습니다.
빈소 및 조문 정보
빈소는 부산 BKW 좋은삼선병원 장례식장 5호실에 마련되어 있으며, 조문을 희망하는 분들은 해당 장소를 방문하시면 됩니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장향숙 씨와 아들 홍정기 씨가 있습니다.
발인 및 장지
발인은 2026년 4월 18일 오전 10시에 진행되며, 장지는 부산 수영만 요트장 인근 해역에서 해양장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일정은 변동될 수 있으므로 한국씨름연맹 또는 장례식장 측에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씨름 황금기를 빛낸 레전드 기록
홍현욱 장사는 천하장사 타이틀을 획득하지는 못했지만, 아마추어 11회 우승과 백두장사 4회라는 성과만으로도 당대 최상위 선수임을 입증했습니다. 동갑내기 라이벌 이준희 회장은 “코뿔소처럼 밀어붙이는 스타일과 뛰어난 들배지기 기술이 인상적이었다”고 회상했으며, 가족 역시 그가 천하장사를 이루지 못한 점을 늘 아쉬워했다고 전했습니다. 들배지기는 상대를 들어 올려 뒤로 넘기는 고난도 기술로, 강한 하체와 폭발적인 힘이 요구됩니다. 홍현욱 장사는 이 기술을 기반으로 수많은 강자를 제압하며 ‘들배지기 명수’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특히 1975년 데뷔전에서 김성률을 완파한 경기는 그의 전성기를 알리는 상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또한 홍현욱, 이준희, 이만기로 이어지는 라이벌 구도는 70~80년대 씨름 인기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은퇴 후 씨름 선수 건강 관리 포인트
씨름, 유도, 레슬링과 같은 체급 중심 스포츠 선수들은 은퇴 이후에도 신체에 누적된 부담으로 인해 다양한 건강 문제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홍현욱 장사의 사례는 이러한 현실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 관절 관리: 무릎, 허리, 어깨 등 관절에 지속적인 부담이 누적되기 때문에 정기적인 검진과 근력 강화 운동이 필요합니다.
- 체중 및 대사 관리: 은퇴 후 활동량 감소로 고혈압, 당뇨, 심혈관 질환 위험이 증가할 수 있어 식단과 유산소 운동 관리가 중요합니다.
- 복지 제도 활용: 한국씨름연맹에서 제공하는 지도자 및 심판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은퇴 후 새로운 경력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홍현욱 장사 주요 경력 정리
아래 표는 홍현욱 장사의 주요 커리어를 연도별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그의 치열했던 선수 생활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연도 | 주요 내용 | 비고 |
|---|---|---|
| 1974년 | 대구 영신고 전학 및 씨름 입문 | 유도에서 전향 |
| 1975년 | 씨름선수권 우승 (김성률 격파) | 데뷔 성공 |
| 1975~1982년 | 전국대회 11회 우승 | 아마추어 최정상 |